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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author
how we think
date
12-05-24 21:02
hit
2,023
행복의 추구
 
배소영





최근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학생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나도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최근 유학을 가는 학생들의 수를 보면서 놀라곤 한다. 왜 이렇게 유학생들이 급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모든 유학생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 유학을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사실 유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그것은 성공적인 삶이 ‘행복’을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 행위의 공통되는 목적은 행복의 추구이다”라고 말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인간은 왜 행복을 추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러한 질문에는 답이 없거나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 추구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Dawkins, 2006)
한국은 최소한 경제 성장과 산업화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가난뱅이 나라가 된 지 불과 50여년 만에 성공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OECD가 최근 조사한 나라별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행복지수에 있어서 회원국 30개 중 25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 성공한 사회가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그들은 아직 성공에 굶주린 것일까? 이러한 사실은 행복이라는 것이 외적인, 다시 말해 경제적 성공으로만 정의되는 척도에 따라 얻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준다.
성공에는 외적인 성공만이 아닌 다른 의미의 성공이 있다. 그것은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는 내적인 성공이다. 인생의 성공에 관해서 에머슨은 그의 <성공> 이라는 시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거짓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한국 사회가 이룩한 경제적인 혹은 기술적인 성공과는 차원이 다른 인생의 성공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인간답게 올바른 인격을 갖추어 삶을 의미 있고 보람되게 영위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한국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외적으로는 성공하였지만, 내적인 성공은 이룩하지 못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한국 사회가 내적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몇 가지 경험적인 사실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자살률 세계(OECD 국가 중) 1위, 저출산율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 등의 부끄러운 수치들이 모두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성공에는 결국 외적인 성공과 내적인 성공이 있고, 이 둘은 모두 우리의 행복을 위한 조건들이다. 최소한 경험적인 사실로 미루어 보자면 외적인 성공은 없어도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내적인 성공이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하였다. 내적 성공이라는 것은 결국 올바른 도덕적인 삶을 가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성공을 하고도 불행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윤리적인 삶이 한국 사회에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한국 사회는 외적인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내적인 성공을 이루는 데에 실패한 불행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내가 유학 생활을 시작할 때는 왜 유학을 왔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유학을 하는 정확한 동기나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확하게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누군가 지금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내가 유학을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해 주고 싶다. 이 이유는 위에서 말한 외적인 성공과 내적인 성공을 위한 삶에의 도전이다. 외적인 성공을 위해서 보다 전문적이고 선진화된 학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고, 내적인 성공을 위해서 한국 사회가 형성하지 못한 훌륭한 윤리도덕적인 삶의 모습들을, 특히 올바른 전인적인 교육을 통해서 배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윤리도덕적인 삶이란 인생에 있어서 덕이 있는 더 좋은 인격체로서 훌륭한 세계관과 원활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나에게는 전자보다 후자의 이유가 더 의미 있는지도 모른다.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물질적이고 외적인 조건에 만족하는 삶 보다는 내면에 있는 우리들의 인간다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진리가 앞으로 한국 사회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흐름에도 도덕적 견제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해 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나의 유학 생활이 학문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국가와 인류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